푸른 자살

‘아, 새벽 거리. 봤나? 그 속으로 지나왔지. 그 속으로? 차고 맑은 새벽의 피 속으로. 그렇지, 내 따뜻한 피를 섞었지. 내 몸 속의 한
줄기 파란 감각…… 새벽의 푸른 육체 속으로 뚫린 (나의 육체가 지나오면서 그린) 한줄기 따뜻한 구멍…’ – 정현종의 <새벽의
피>

밤과 낮을 연결시켜주는 묘한 시간, 새벽은 푸르다. <루앙 대성당>을 그린 모네가 이를 증명해주었으며,
<새벽의 피>를 쓴 정현종도 ‘새벽의 푸른 육체’를 언급했다. 그리고 한국의 ‘매지 스타(Mazzy Star)’라 할 ‘푸른 새벽’도
<bluedawn>에서 맑고 푸른 새벽을 전달하고 있다.

‘푸른 새벽’은 ‘데미안’의 소로우(sorrow)가 ‘더더’의
다운(dawn)에게 프로포즈하면서 탄생한 밴드로 다운의 차갑고 영적인 음악 피(血)에 소로우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피가 더해짐으로서 심상치 않은
야누스적 사운드를 창조해내고 있다. 이는 신과 세속이 공존하는 새벽이라는 시간의 성격과도 부합하며, 어쿠스틱하면서도 몽롱한 느낌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싶다던 이들의 의도와도 맞아떨어진다.

모던 록 클럽 ‘빵’과 야생적(?) 인디레이블 ‘카바레 사운드’의 일원인 푸른
새벽의 음악적 지반은 드림 팝, 포크, 사이키델릭이다. 그들이 원하는 꿈꾸는 듯한 사운드는 이 첫 앨범에서 다운의 어쿠스틱 기타 음악을 반석으로
삼고, 객원 드럼의 연주를 프로그래밍하여 리듬으로 쌓고, 소로우의 일렉트릭 기타를 얹어 완성되었다. 어쿠스틱 사운드가 반석인 만큼
‘April’과 ‘자위’를 제외하고 보컬의 음성은 여과나 정제 없이 그대로 실렸다.

<bluedawn>의 모든 곡 안에는
오직 ‘나’와 ‘너’만이 존재하는데, 떠나간 연인 ‘너’는 자폐적으로 변해버린 또 다른 ‘나’의 분신이라는 사실이 뒤에서 밝혀지고 있다. 앨범
전체를 아우르며 ‘벗어나고 싶은데 빠져들고 있는 나’의 자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내 안에 갇혀 있는 괴로운 나’를 자위하며, ‘푸른 자살’을
통해 내안의 나를 제거하려고 한다. 이는 자신 안으로 점점 침잠해 들어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슬픈 이야기이다.

‘집착’은 매지 스타의
‘Fade into you’를, 다운의 목소리는 호프 산도발(Hope Sandoval)의 감미로운 음성을 연상시키지만, 분명한 것은 영향은
받았으되 의도적으로 어떤 스타일이나 경향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른 새벽’의 음악은 여유로움과 편안함, 솔직함을 획득할 수
있었다.

푸른 새벽은 천재적 광기가 번뜩이는 테크닉이나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화석의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듣는 이들을 깊은 새벽잠과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도록 하는데, 그 힘이 바로 이 여유로움, 솔직함, 그리고
편안함이다.

출처[IZM] : http://www.izm.co.kr/menu_view.asp?key=1&idx=2395&a_idx=607&view=2

90년대.. 조지윈스턴과 케니지의 뉴에이지에 빠졌을때..
그때는 이런 달콤한 음악을 너무 좋아했었다..
항상 자기전에 음악을 틀어놓고 알속에서 잠드는 새처럼 웅크리고 자던 기억들..
현란한 사운드와 높은 음역대를 넘나드는 뮤지션들 속에서 이런 음반을 골라내는건 나름 재밌는듯하다..

CC BY-NC-ND 2.0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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